
세상에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그러나 강하고 단단한 것을 부수는 데는 이보다 더 훌륭한 것이 없다. 세상에 이를 대신할 것이 없다. 약함이 강함을 이기고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넘어선다는 것을 온 세상에 모르는 이가 없지만 누구도 이를 실천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불행의 한복판에 고요하게 머무름에도 나쁜 기운이 그의 심장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는 도우려고 하지 않기에 사람들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된다. 진실의 말은 역설적으로 들린다. 믿음직한 말은 아름답지 못하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하지 못하다. 선한 사람은 따지지 않고 따지는 사람은 선하지 않다. 덕이 있는 사람은 흠을 찾지 않고 흠을 찾는 사람은 덕이 없다. 성인은 쌓아두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모두 준다. 더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이 준다..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단단한 것을 이긴다. 형태 없는 것은 공간이 없는 곳으로도 들어간다. 그러기에 나는 무위의 유익함을 안다. 말없는 가르침 움직임 없는 행함 세상에 그것을 아는 이가 거의 없구나 그것이 성인의 길이다. 이 세상은 아낌없이 주는데 이를 얻은 이는 참으로 드물다. 작가는 말한다. '단단함'과 '부드러움'에 대한 생각을 바꾸면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지고 그저 물 속에 있기만 하면 된다. 나는 수영을 내가 애써 하는 것은 거의 없는 부드럽고 고요한 체험으로 만들기로 했다. 그러자 나의 수영 세계는 달라졌다. 쉽고 즐거워졌으며, 애쓸 필요가 없어졌다. 나는 노자가 이 장에서 말한 것처럼 "무위가 얼마나 유익한지"를 배웠다. 이것은 행하지 않고 이루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에 이 방식을..

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다. 다스리는 자가 이를 지키면 세상은 각자의 박자에 따라 저절로 변한다. 삶이 단순하면 겉치레가 사라지고 우리의 순수한 본성이 빛난다. 욕심이 없으면 고요하고, 세상은 저절로 바르게 된다. 침묵이 있어야만 내면에서 우주의 중심을 발견한다. 예로부터 하나에서 비롯된 것들이 있다. 하늘은 하나여서 맑고, 땅은 하나여서 단단하며 영혼은 하나여서 가득하고 만물은 하나여서 온전하며 나라는 하나여서 바르게 된다. 이 모두는 온전함의 덕 안에 있다. 사람이 도의 일에 끼어들면 하늘이 탁해지고 땅은 황폐해지며 균형은 무너지고 만물은 소멸한다. 그러므로 귀함은 겸손함에 뿌리를 두고 높음은 낮음을 근본으로 한다. 이것이 바로 높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외롭고, 부족하며, 보잘..

다른 사람을 아는 것은 지식이고 나를 아는 것은 지혜다. 힘으로 다른 사람을 다스리고 진정한 강함으로 자신을 다스린다. 충분히 가졌음을 깨달은 사람이 진정한 부자다. 제자리를 잃지 않은 사람은 오래 산다. 도에 자신을 내맡긴 사람은 영원히 산다. 지식과 지혜의 차이가 뭘까? 지식은 주로 사실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지혜는 사실을 뛰어넘어 응용력과 통찰력까지 포함한다. 지식을 무기로 사용하는 것은 결국 지혜이다. 따라서 아무리 지식이 뛰어나도 지혜가 없는 사람은 앙꼬없는 찐빵이라고 할 수 있다. 지혜는 어디서부터 생겨나는가?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처럼, 노자도 나를 아는 것이 지혜라고 한다. 내가 나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은 심리학에서 메타인지라고 한다. 요즘 시대에 지혜라고 하면 너무 고리타분하기 들려서일까?..

진리를 아는 사람은 길을 갈 때 흔적을 남기지 않고, 말을 할 때 상처를 주지 않으며 줄 때 계산하지 않는다. 문을 닫으면 열쇠로 잠그지 않아도 열리지 않고, 매듭을 묶으면 노끈이 아니어도 풀리지 않는다. 지혜를 갖고 모든 존재를 치우침 없이 도와주라. 어느 하나 포기하지 마라.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지 마라. 이를 일러 빛을 따름이라고 한다. 선한 사람은 선하지 않은 사람의 스승이며 선하지 않은 사람은 선한 사람의 과업이다. 스승을 존경하지 않고 학생을 보살피지 않으면 반드시 혼란스런 상황이 생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신비다. 작가는 말한다. 이 장에서 가장 의미 있는 구절은 "선한 사람은 선하지 않은 사람의 스승이며, 선하지 않은 사람은 선한 사람의 과업"이라는 부분이다. 이것은 삶을 이해하고 ..

유연하면 부러지지 않고 구부러지면 다시 펴진다. 비우면 채워지고 낡으면 다시 새로워진다. 적으면 얻게 되고 많으면 미혹된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하나 됨을 끌어안는다.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기에 사람들은 그의 빛을 볼 수 있고 스스로 옳다고 하지 않기에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는다. 스스로 누구인지 모르기에 사람들이 그 안에서 자신들을 보고, 마음속에 품은 목적이 없기에 하는 일마다 이루어진다. 옛사람이 유연하면 깨지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참으로 옳다. 진실로 온전함을 이루면 모든 것이 자신에게로 귀결된다. 앞의 장에서 노자는 "모든 사람이 알맞은 장소에 자리를 잡는데 나만 홀로 고집스레 경계 밖에 머문다. 그러나 내가 뭇사람과 가장 다른 것은 나 홀로 위대한 어머니가 우리를 먹이는 것을 아는 데 있다."고..

성자가 되기를 포기하고 지혜로움을 버려라 그러면 모든 사람에게 백배는 이로울 것이다. 인과 의를 버려라. 사람들이 저절로 효성과 자애를 되찾을 것이다. 기교와 그로 인한 이익을 끊어버려라. 도적이 사라질 것이다. 이 모두는 그저 껍데기일 뿐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러므로 간소함을 보고 진정한 본성을 깨닫고, 이기심과 욕심을 버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에게는 이렇게 와닿는다. 뭔가 갖춘자가 되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 부족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숨기려 하지 말라. 지혜로운 자인 척 하는 것이 오히려 사람들에게는 해롭다. 인과 의를 지키느라 율법주의자가 되지 말라. 성경에서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냐고 따졌던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율법도 사람을 위한 것임을 기억하라. 법이 많..

완전히 비워라. 마음을 고요하게 하라. 세상일의 혼잡함 속에서 끝이 어떻게 다시 시작이 되는지 보라. 만물이 무성하게 뻗어나가는 것은 결국 근원으로 돌아가기 위함이다. 그 현재와 미래로. 뿌리로 돌아감은 고요를 찾음이고 고요를 찾음은 제 명을 사는 것이다. 제 명을 사는 것은 언제나 한결같음이다. 한결같음을 아는 것을 통찰이라 한다. 이 순환을 알지 못하면 영원한 재앙에 이르게 된다. 한결같음을 알면 너그러워지고 너그러워지면 치우침이 없다. 치우침이 없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고귀함이고, 신성함이다. 신성해짐으로써 도와 하나가 될 것이다. 도와 하나가 되는 것은 영원함이다. 이것은 영원히 지속되어 육신이 다하는 날까지 위태롭지 않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성장하고 변화한다. 이 변화라는 것이 한결같은 진리이다..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 이夷라 하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을 희希라 하고 잡아도 잡히지 않는 것을 미微라 한다. 이 세 가지는 나누어 정의할 수 없는데, 본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는 각각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오직 직관에 의해서만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것, 들리지 않는 것, 잡히지 않는 것은 하나로서 존재한다. 위라고 해서 더 밝지 않고, 아래라고 해서 더 어둡지 않다. 그것은 계속 이어지고, 이름 지을 수 없으며 결국 없음으로 돌아간다. 앞에서 맞이하면 머리가 보이지 않고, 뒤에서 따라가면 꼬리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알 수는 없지만 자신의 삶 속에서 온전히 그것이 될 수는 있다. 도덕경의 내용 중에서 가장 수수께끼같은 부분이다. 작가는 쓰고 있다. 시작도, 끝..

다섯 가지 색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다섯 가지 음은 사람의 귀를 멀게 한다. 다섯 가지 맛은 사람의 입맛을 잃게 한다. 말 달리고 사냥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만든다. 얻기 힘든 재물을 위해 애쓰는 것은 성장을 가로막을 뿐이다. 성인은 눈으로 세상을 보지만 내면의 눈을 믿는다. 그는 만물이 오고 가도록 내버려둔다. 그는 드러나는 것이 아닌 내면의 것을 취한다. 작가는 말한다. 노자는 우리가 감각적인 즐거움과 경험에 너무 많은 힘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감각적인 것에만 몰두하면 결국 환상에 불과한 외형 중심의 세상을 만들어내게 된다. 모든 것은 오고 가기 마련이므로 물질이 중심인 세상의 본질은 잠시 동안의 덧없는 상태일 뿐이다. 우리가 사물의 표면에 드러난 색깔에만 집착하면 결국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