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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속이는 스토리를 꾸민다

 

가까운 사람이, 예를 들어 배우자가 내가 싫어하는 일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내 화를 돋우는 것은 그 행동 자체가 아니다. 나를 자극하는 것은 그가 나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고, 나를 충분히 배려하지 않고, 나를 충분히 존중하지 않아서 그런 행동을 했다는 나의 믿음이다.

 

자아가 우리를 얼마나 쉽게 잘못된 길로 유도하는지 살피려면 그 일 자체와 '대체 왜?'를 분리해보자. 배우자에게 화가 났더라도 샹대가 그 일에 대해 계속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고, 당신에게 보상이 될 만한 온갖 행동을 한다면 화를 계속 내기는 어렵지 않을까? 문제의 행동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감을 갖고 있을테지만 배우자가 그 일에 책임을 지고 당신을 사랑하지 않거나 존중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라는 의사를 전달하면 분노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그 일 자체라는 현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이제 당신이 그 행동에 부여했던 의미가 변했고 그에 따라 당신의 감정도 달라졌다.

 

같은 상황에서 사실은 배우자에게 당신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 없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건 어떤 의미지?'

 

배우자가 자존감이 낮아서 사랑과 존중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주고받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의미일 수 있다.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나는 배우자에게 친절하게 사랑을 기울였나? 내 행동이 나를 대하는 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져야 하는 의미일 수도 있다. 어떤 결론을 이끌어내든 '난 당해도 싸. 내게는 뭔가 문제가 있으니까'라는 답은 절대 정답이 아니다.

 

물론 당신의 행동에 잘못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당신이 사랑과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것을 진실이라고 믿으면 피해자의 태도로 삶을 살게 된다.

 

분노 버튼은 어디서 눌리는가

 

두렵거나 고통스러워서 화가 난다고 말하는 것은 스위치를 켜짐 방향으로 젖혔기 때문에 전등이 들어왔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고통스럽고 두려운 것과 분노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바로 내 통제력이 미치는가 아닌가이다.

 

분노를 부르는 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정서적, 신체적 고통이다. 두려움이 작동하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가 정서적으로 고통스러운 데다 더 큰 고통을 불러올 가능성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늘 통제를 추구하는 자아로부터 해방되어 관점의 폭을 넓힐 수 있다면 고통이 옅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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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는 스스로가 호감 가지 않는 사람이기에 거부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자연히 자신의 가치를 의심받는 모든 상황을 경계한다. 그래서 자기중심적인 심리를 가진 사람은 자신이 통제하기 힘든 상황, 곧 존중받지 못하거나 웃음거리로 몰리는 상황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취약함이 느껴진거나 누군가가 쳐다보는 느낌이 드는 상황에만 처해도 과열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