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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하다] by 조승연

M.Rose 2021. 5. 1. 13:49

시크하다(조승연)

 

 

[이기적이어서 행복한 프랑스 소확행 인문학 관찰에세이]

 

프랑스 여자는 늙지 않는다

 

로마시대부터 라틴족은 죽음을 어둡고 음산한 것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열쇠 같은 것으로 믿었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분노를 다스리는 법>이라는 에세이에서 "내가 죽여버리고 싶은 사람을 굳이 죽이지 않아도 자연이 알아서 죽인다"라고 말했다. 어차피 늙어 죽을 사람을 좀 더 빨리 보내고 싶어 살인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라는 것이다. 어차피 죽는다는 것, 즉 인생의 엔딩이 죽음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또 그 엔딩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인생은 발버둥치며 살 필요 없다는 철학이 라틴 민족의 후손인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인이 낙천적이고 열정적인 인생을 추구하는 요소로 승황한 것 같다.

 

죽음이 필연이라면 그 중간에 벌어지는 일들은 고통스러운 것이라도 숭고한 일이 된다. 또 인생이 죽기 전까지만 주어지는 것이라면 자기 감정과 느낌을 내일이 마지막 날인 것처람 항상 받아들이며 살아야 한다는 생활 태도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 - 프랑스식 사고방식

 

"석양이 아름답더라도, 영원히 매일 석양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만약 인생의 시간이 무한해진다면, 이 역시 흔해진다. 영원한 인생에서는 어떤 생의 순간도 귀하지 않다.

...

지중해 문화의 철학 즉 삶은 죽음이라는 엔딩이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는 것을 철학자들은 '메멘토 모리'라고 하는데, 파리야말고 그 자체가 거대한 메멘토 모리라고 말할 수 있다.

 

변덕스럽고, 불평 많으며, 피곤한 사람들

 

프랑스인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우리와 다르게 바라본다. 이는 메멘토 모리 전통과 관계가 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살아 있을 때만 감정을 느낀다. 태어나기 전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고 죽은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는 제한된 시간이라면, 그것도 단 70~80년만 주어졌다면 슬픔, 절망, 우울 같은 고통스러운 감정도 행복, 사랑 같은 감정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이 되낟. 그것이 삶의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면 다른 사람 앞에서 감출이유가 없다. 이것이 언젠가는 죽을 것임을 잊지 않고 사는 프랑스인의 인생관이다.

 

프랑스인에게 신경질 나고 화가 나 싸우는 것은 실존적 인생의 일부로 특히 가족 앞에서는 감출 이유가 없는 당당한 행동의 된다. 프랑스인은 인간의 모든 감정과 감각을 존재의 증명으로 보기 때문이다.

 

프랑스 68세대의 전통 가족관 파괴

 

1968년 5월 학생항쟁의 결정적인 계기는 프랑스 대학 기숙사에서 미혼 남녀 학생이 동거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였다. 왜 그런 이유로 학생항쟁이 발발했느지를 알려면 프랑스가 혁명으로 만들어진 국가라는 점이다. 아주 오랫동안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정치적으로 왕정제, 사회적으로는 귀족과 평민, 양반과 천민, 브라만과 수드라가 있는 계급 사회였다. 계급 사회가 불공평애 보여도 쉽게 뒤집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이 불공평한 질서가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초래되는 무질서보다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인의 '혁명정신'은 정치를 뛰어넘어 예술과 실생활로 확장되었다. 일반 사람들의 미적 감각에 도전장을 던지는 인상파, 야수파, 큐비즘, 레디메이드 아트 같은 새로운 혁명적 트렌드가 꼬리를 물었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면서 독일은 프랑스의 문화를 '데카당스 문화(타락의 문화)'라고 부르며 탄압했다. 이 무렵 태어난 프랑스 청년들은 새로운 가족 형태를 통해 끊임없이 전통 가족관에 도전하는 것을 자유롭고 민주적인 프랑스의 가족관으로, 일부일처제와 출산이라는 틀에 가족을 가두려고 하는 것을 나치의 가족관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들이 1968년 학생항쟁을 주도한 세대다.

 

드골의 프랑스 VS 미테랑의 프랑스

 

프랑스 사람은 흔히 2차 세계대전 후 지금까지 드골의 프랑스와 미테랑의 프랑스가 공존한다고 말한다. 드골의 프랑스는 전통적인 프랑스 가정의 모습을 보여준다. 미테랑 대통령은 드골과 반대된다. 미테랑과 함께한 많은 여성은 정치인 미테랑의 여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여자로서 저마다의 인생을 자유롭게 살았다. 그리고 미테랑이 죽었을 때는 모두가 그를 향해 '좋은 친구이자 사람'이라며 진심어린 애도를 표했다. 미테랑은 68세대의 상징이다.

 

우리나라도 지금 전통적인 가족관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젊은이들은 점차 개인의 소소한 행복을 중요시하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사실 이제는 그런 가치관에 적합한 새로운 가족관이 필요한 때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동거하더라도 부모에게 숨겨야 하고,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가지면 주변의 눈치를 보게 된다. 아직도 우리는 '가족'이라고 하면 두 이성 커플이 결혼해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전념하는, 할아버지 세대의 사고방싱을 그래도 따른다.

 

새로운 실험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가족도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같다. 현 세대가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새로운 가족관이 없기에 그들은 아예 가족 만들기를 포기한다. 가치관은 변하는데 출산율 저하 문제를 전통 가족 형성에 필요한 아파트 임대 자금을 저리로 빌려주거나 공익 광고로 해결하려고 한다. 새로운 세대가 자기의 가치관에 맞추어 나름의 새로운 가족관을 형성할 자유와 용기, 그리고 그들의 실험을 존중해주는 기성세대 없이는 우리나라의 고질적 문제인 가족 없이 혼자 늙어가는 외로움과, 아이가 없는 나라의 절망은 절대로 해소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문제에 직면한 우리로서는 프랑스가 여러 어려운 실험 끝에, 결혼은 가장 적게 하지만 유럽에서 가장 건강한 출산율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을 참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의 실험실

 

이 모든 실험 끝에 프랑스 사람이 알게 된 것은 '인생에서 성공이라는 것은 없다'이다. 오히려 앞서 말한 벨기에 코미디언 다보스처럼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그 배고픔 자체가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 즐기는 것이다.

 

성공이란 내 인생의 목표가 해소되는 시점을 말한다.

 

어떤 목표를 이루는 것으로 내 인생의 성패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먹고 놀면서 느끼는 '즐거운'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어떨까? 어쩌면 프랑스인은 진짜 성공한 인생이란 성공하려고 발버둥치지 않아도 되는 인생이고, 진짜 행복한 인생은 행복이란 것을 믿지 않고 주어진 순간에 충실한 인생일 수 있다는 결론을 오랜 시행착오 끝에 얻은 것은 아닐까?

 

남자는 그 러브스토리의 합

 

연애는 프랑스인에게 인생을 배우는 학교다. 구스타브 플로베르는 젊은 사람이 수많은 사랑과 좌절을 겪어가며 인생을 알게 되는 과정을 <감정 교육>아라는 소설 제목으로 표현했다. 사실 시골 청년이 세련된 파리 여성과 교제하며 점점 신사도가 있고 예의 바른 사람으로 변해가는 내용은 프랑스 소설에서 흔히 다루는 내용이다.

 

앵글로색슨 VS 프랑스

 

프랑스인은 미국인이 '사람들에게 연애를 자유롭게 못 하게 해서 물질에 집착하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해결해야 할 행복의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라고 한다'라며 투덜거린다. 그들은 미셀 푸코의 <성의 역사>를 자주 인용하며 영국과 미국인을 '빅토리아인'이라고 한다.

 

영국이 성에 대해 보수적이 된 이유는 산업혁명 때문이라고 한다. 임금 노동자가 생기기 시작한 산업시대에 접어들자 임금을 받을 수 없는 어린아이를 누가 경제적으로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생겨난다. 남성은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게 되면서 자기가 먹여 살리는 아이가 자기 아이가 틀림없다는 확신이 필요해져 아내의 외도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또 남자가 외도해서 아이가 생기면 한 사람 봉급으로 두 집 살림을 해야 하므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치기 때문에 아내도 남편의 외도에 예민해지게 되었다.

 

산업혁명이 고도화되고 임금 노동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19세기 영국에서부터 여성의 몸을 목부터 발까지 뒤덮게 하고 남자도 검은 양복 뒤에 육체를 감추고 성적 행위를 금기시하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시작한 이러한 윤리관은 당시 영국 여왕의 이름을 따서 '빅토리아 윤리관'이라고 한다. 프랑스인에게 성을 억압하는 '빅토리아 윤리관'은 산업혁명 이후 신흥 계급의 콤플렛와 공업시대의 경직성을 대표하는 졸부나라 영국과 미국의 윤리관이다. 대부분의 국민이 가톨릭 신도인 프랑스인 머릿속에는 아직도 '영국,독일,미국=개신교=산업혁명=부르주아 계급=성적 억압'이라는 공식이 박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