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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귀가 얇다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이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강하게 부인하곤 했었다. 하지만 설득은 여러가지 모습으로 다르게 나타난다. 이 책을 읽고나서 상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내가 칭찬과 긍정의 멘트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칭찬과 긍정적 멘트는 결국 설득의 다른 모습인 것이다. 어찌보면 이것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반적인 성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설득의 모습은 칭찬뿐만이 아니라 폭력적인 모습을 띠기도 하고, 파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세뇌와 최면, 암시에서 시작된 심리 조작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평범한 사람이 테러리스트가 되기도 하고, 사이비종교에 빠져 가족을 등지기도 한다. 이 예를 이 책에선 '터널효과'라고 부른다. 즉, 터널 속에서 있는 것과 같은 심리적 효과를 조성함으로써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무뎌지고 앞에 보이는 출구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심리조작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부정적인 느낌이 있다. 하지만, 교육과 양육의 현장에서도, 사회의 곳곳에서 행해지는 동기부여 활동들 모두 이 큰 범주에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매일 보는 광고에서조차 우리가 의식하든 하지 않는 심리조작의 기법들이 쓰여지는 것이다. 

 


천재 에릭슨의 등장과 더블 바인드 기법

 

정신과 의사이자 천재적인 최면요법가이기도 했던 밀턴 에릭슨은 치료를 위해 개발한 기법 중에 더블 바인드 기법을 사용했다. 상대가 무언가 해주기를 바랄 때, 그 일을 할 생각이냐 아니냐고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선택지를 준비해 질문하는 방법이다. 

 

이 기법은 영업이나 판매 등에서 응용되고 있다. 자동차를 살까 말까 갈등하는 고객에게 "이 장치를 달아놓을까요?" 아니면 "자동차 색깔은 흰색을 좋아하세요? 아니면 검은색을 좋아하세요?"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자동차를 구매하는 것을 전제로 해서 그다음 선택 사항으로 고객의 관심이 향하게 한다. 이렇게 하면 살까 말까 고민하던 것을 멈추고 세세한 취향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어느새 구매는 기정사실이 되고 만다. 

 

더블 바인드는 '함의(implication)'라고 불리는 기법 중 하나다. 인간의 마음은 불가사의해서 직접적으로 뭔가를 하라는 말을 들으면, 명령받았다고 받아들여 마음속에서 저항이 생긴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넌지시 말하거나, 하는 것을 전제로 놓고 말하면 저항감이 생기기 어렵다. (pp.155~158)

 

조작하지 않는 조작

 

오늘날과 같이 타자에 대한 경계심이 강하고, 타자의 강요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개인주의 시대에는 강하게 설득하려고 하는 방식은 적합하지 않다. 

영업의 최종 목적이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라면, 상품을 사달라고 한마디도 권유하지 않고 고객에게서 꼭 팔아달라는 말이 나오도록 하는 것이 성공적으로 고객의 행동을 이끌어온 것이 된다. 

 

중립적인 선의의 제3자로서 상담을 하는 중에 상대의 니즈를 완전하게 파악할 뿐 아니라 신뢰도 획득하는 방법은, 상대를 강인하게 조종하려고 하거나 무리하게 설득하려고 하는 방법보다 훨씬 성공률이 높다. (p.167)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할 여유를 읽고 수동적으로 남의 주장을 그대로 따라하고 그것을 자신의 의사라고 착각하게 될 때, 전체주의의 망령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배타주의와 전쟁으로 내달리게 된다. 또한 흑이냐 백이냐 결말을 지으려는 결벽성이 심해지고 독선적인 과잉 반응이 일어나기 쉬워진다. 

 

심리 조작이란 주제는 현대인에게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려는 주체성이 있는가를 묻고 있다. 정보가 홍수를 이루고 현실감이 희박한 불균형적인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과연 스스로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나 공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체험만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에 비춰보아서 판단하고, 냉철하게 행동할 수 있는가? 요즘 들어 이런 물음이 한층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p. 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