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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은 영원하다.
하늘과 땅이 영원할 수 있는 까닭은 스스로를 위해 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늘과 땅이 영원할 수 있는 비결이다.
성인도 마찬가지로 자신을 뒤에 세움으로써 결국 앞에 서고
자신을 돌보지 않기에 오히려 보호받는다.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면 당신이 필요한 것을 얻을 것이다.
자신을 버림으로써 성취를 이룬다.


영원하다는 것은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경계가 없이 어디에나 뻗어 있다. 자신를 위해 사는 인간은 자아(ego)라는 틀 속에 갇혀 영원함을 지닐 수 없다. 나를 버림으로써 영원함을 얻는다.
이 부분에서 떠오르는 성경구절이 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4)


결국 참다운 인생은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버리며 사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우며 사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무조건적인 희생을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도 한때는 희생하는 삶이 바른 삶이라 여기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희생'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뭔가 인위적이고,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느낌이 든다. 자아가 여전히 살아있으면 아무리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준다고 해도, 사랑이 아닌 희생이 되어 버린다. 희생이 되어 버리면 얼마 못 가서 지쳐서 포기하게 된다.

작가는 말한다. 도에서 모든 것들이 흘러나왔음을 느끼고 당신이 받은 것들에 감사하라. 무의미한 추구를 그만두고 멈춰 서서 바라보라.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쫒으려는 마음을 진정시켜라. 스스로를 내려놓고 신에게 맡겨라. 이렇게 내면의 신이 드러나는 삶을 살면 당신은 세속적인 에고로부터 멀어지고 신에게 다가서게 된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아서 억지로 노력하지 않으면서 만물을 기른다.
물은 모든 이가 꺼리는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러므로 물은 도에 가깝다.

사물의 본성에 따라 살아라.
땅을 가까이하여 살아라.
마음을 헤아릴 때는 마음 깊숙이 들어가라.
사람을 대할 때는 온화하고 친절하게 하라.
말한 바를 지켜라.공평하게 다스려라.
거동함에 있어서는 때를 잘 살펴라.
본성에 따라 사는 사람은 사물의 이치에 맞서지 않는다.
언제나 해야 할 일의 진실을 알고 현재의 순간과 조화를 이룬다.

 

도덕경을 이 부분까지 읽어봤을 때, 무언가를 억지로 하지 말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억지로 한다는 것은 자아가 앞선다는 것이다. 자아가 들어서 있는 그 공간을 비워야만이 도가 물처럼 흘러갈 수 있다. 결국 앞의 장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자아(ego)를 내려놓아야 한다. 자아가 없으면 우리는 물이 될 수 있다. 물처럼 낮은 곳으로 흐르고 노력하지 않으면서 만물을 이롭게 할 수 있다. 자아는 어떻게 내려놓는 것일까? 그냥 머리로 내려놓아야지 하면 내려놓아 질까? 그것이 쉽지 않아서 바울이 '날마다' 죽는다고 한 것일까?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아를 내려놓는 방법은 내 자아를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하루 동안, 망루에 올라서서 사방을 살피듯 에고가 무억을 원하는지 관찰하라. 에고의 요구가 얼마나 강렬한지에 따라 등급을 매기면서 그 힘을 약하게 만들어라. 억제하기 힘든 요구에는 높은 등급을 주고 반대로 쉽게 조절하고 극복할 수 있는 요구에는 낮은 등급을 매겨보라. 이렇게 하다보면 점점 더 내가 내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들이 생겨난다. 그냥 객관적으로 나의 자아를 바라볼 수만 있어도 저절로 나의 자아는 약해지고, 자아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나에 대한 사랑(Self-love)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나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나를 전체의 한 일부분으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건강은 가족과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친다. 내가 힘들고, 지치지만 아무도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을 때, 나는 누구보다 따뜻한 내 자아의 위로자가 되어야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힘든 일을 할 때도, 나만큼은 스스로에게 '잘하고 있어. 넌 참 멋진 녀석이야.'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노자선생님이 말하려 한 도가 내 안에서 잘 흐르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