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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기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관심과 정성으로 키워진다. 그렇게 자란 아기는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고 또 누군가를 살피고 돌본다. 서로 돌봄을 받고 돌보는 관계는 끊임없이 우리 삶의 지짓대로 역할을 한다. 서로를 돌보는 관계가 끈끈하고 빈번할 수록 그 사회는 건강하고 풍요로울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일거다. 내 자신을 넘어 동료나 팀원의 성공을 돕는 문화와 시스템을 갖춘 회사는 위대한 회사로 발돋움할 것이다.
누군가를 돌보다보면 나도 성장한다. 돌본다는 것은 에너지가 들어간다는 것이고, 그 에너지를 내기 위해 나는 열심을 낼 것이고 나의 삶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마이너스방향이 아니라 플러스 방향이다. 비운 것 같지만 더 채워지는 역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지금 사는 곳의 이웃집은 옆집이 들리건 말건 TV를 큰소리로 틀어놓고, 보통 얘기하는 것도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편이다. 이웃집은 안중에도 없는지 자정이 되어서 들어와선 온갖 소리로 곤한 잠을 깨워놓곤 한다. 한번은 보일러 연통을 우리집쪽으로 해놔서 방향을 좀 틀어달라고 어머니가 찾아가서 요청을 했더니 말이 아예 안 통해서 그냥 돌아왔다고 한다. 지금 내가 왜 이웃집 얘기를 하고 있을까? 음...만약에 나의 이웃이나 동료가 아니면 가족이 이렇게 말이 안 통하는데도 돌봄으로 표현되는 최소한의 헌신을 할 수 있을까?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이웃이나 동료한테도 친절을 베풀 수 있을까? 답변은 해야 한다이다. 여기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나온다. 나를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볼 때도 비판적이다. 하지만 나를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사람이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어떤 사람에게든 마음을 열 수 있다. 그들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더라도 나는 나의 길을, 가야만 하는 길을 걷는 게 맞다.
누군가 미운 사람이 있다면 나도 누군가에겐 미운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오 헨리가 쓴 단편소설에 '강도와 신경통'이 있다. 어떤 집에 강도가 들어왔는데, 강도가 손을 들라고 소리치자 주인이 한 팔만 들었는데, 그 이유는 주인이 어깨에 신경통이 있어서였다. 마침 똑같이 신경통이 있던 강도는 위협적인 태도를 바꾸고 주인과 증상과 치료에 대해 얘기를 나누게 되며 그러는 동안에 부인은 차를 끓여오고 해서 아닌 밤중에 다정한 파티가 되고 말았다는 내용이다. 강도도 공감하면 친구가 된다. 진정으로 공감하려고 노력하면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