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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는 기시미 이치로가 쓴 책이다. 책 제목에 나는 과연 '네'라고 선뜻 대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이야 건강하시니까 늘 필요한 존재로 계시지만, 연로해지셔서 의사소통도 하기 힘들어져도 나는 큰소리로 '네'라도 대답할 수 있을까라고 두번 내자신에게 자문해보았다. 나 또한 때가 되면 거동을 못하고 누군가의 돌봄의 대상이 될 지도 모른다.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생각하고 한번 곰곰히 묵상해보기위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가장 큰 효도는 불효를 하는 것
서울에서 강연을 할 때, 젊은 친구들이 "어떻게 하면 효도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일본에서는 한 번도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가장 큰 효도는 불효를 하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제가 2006년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졌을 때 아버지는 갑자기 10년은 젊어진 듯 건강해지셨습니다. 힘이 없던 목소리에도 기운이 넘쳤습니다. 자식이 병들었으니 당신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이겠지요.
아버지도 오랫동안 협심증을 앓고 계셔서 관동맥에 몇 개의 스텐트를 삽입한 상태였기 때문에 6개월 한 번씩 입원해서 조영검사를 받으셔야 했습니다. 어느 날 검사 중에 상태가 나빠졌다는 연락을 받고 저는 이른 아침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혈압이 급격히 떨어졌을 때는 이대로 아버지가 가버리시는 건 아닐지 걱정도 되었습니다. 다행히 위기 상황은 벗어났지만, 검사를 마치신 아버지는 들뜬 상태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결국 그날 저는 10시간이 넘게 아버지와 함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수술하고 검사받는 일이 결코 편하지 않았을 텐데 아버지는 조금도 불평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제 몸을 걱정해주셨습니다. 당시 저는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가끔 뵙는 아버지에게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매일 격무에 시달린다고 했었겠지요. 자기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는 상황에서 나라면 아버지처럼 다른 사람의 일을 걱정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강연에서 했더니 통역사의 목소리가 메여왔습니다. 강연장을 둘러보니 많은 사람이 눈물을 머믐고 있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당황했지만 이런 식으로도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다는 뜻은 전해졌으니 됐다 싶었습니다. (P.45~46)
자식에게 아직 당신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부모는 이상하게도 힘이 난다.
부모와 자식에서 인간 대 인간으로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 저는 자식이 부모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도 사람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줄 수도, 누군가에 의해 행복해질 수도 없습니다.
물론 부모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부모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지요.
바람 좀 쐬고 싶구나, 해서 시간 날 때마다 여기저기 모시고 다녀도 부모님은 그런 수고 따위는 바로 잊어버립니다. 아니, 잊어버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무 데도 데려가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합니다. 이런 일에 낙담하며 한숨 쉬는 사람들이 있는데, 제 생각에는 부모님을 어딘가에 '모시고 간다'는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벚꽃 피는 계절에 벚꽃 구경을 시켜드리려고 부모님을 모시고 외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벚꽃이 보고 싶어서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원할 때마다 외출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항상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맞춰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쌀쌀맞다며 부모님이 불만을 토로할 수는 있겠지요.
제 아버지는 식사 시간 외에는 주무시는 일이 많아서 이래서야 무슨 즐거움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일어나 앉아 계실 때도 멍하니 밖을 보고 있거나 스웨터의 보풀을 뜯으며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주무시지만 말고 작은 소일거리를 찾아 하루하루를 유익하게 보내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저 자식의 마음일 뿐 부모님에게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자식 눈에 아무것도 안하고 하루를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부모님의 현재가 불행한 것은 아니니까요.
내가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다.
부모님을 이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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