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슬럼프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성적이 떨어지는 현상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심이 마음 깊숙이 자리 잡는 순간이다. 프로 선수들조차 이러한 슬럼프에 빠지면 평소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러한 자기 의심의 순간에 루틴이 가진 힘은 더욱 강력해진다.
일상의 반복은 때로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길을 걸어 같은 장소로 향하는 일. 그러나 이러한 '루틴'이 우리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기, 바로 슬럼프의 순간에 구원의 손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심리학자들은 이를 '통제 가능성의 환상(illusion of control)'과 연결 짓는다. 인생의 많은 부분이 우리의 통제 밖에 있을 때, 루틴은 우리에게 작은 영역이나마 통제감을 제공한다. 골프 선수가 퍼팅 전 항상 같은 횟수로 연습 스윙을 하거나, 테니스 선수가 서브 전 항상 같은 방식으로 공을 튀기는 행동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자신감을 회복하고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심리적 장치인 것이다.
메이저리그 전설 이치로 스즈키는 자신의 루틴에 대한 헌신으로 유명하다. 그는 경기 전 동일한 준비 과정을 거치며, 심지어 방망이를 다루는 방식부터 유니폼을 정리하는 방법까지 철저히 일관성을 유지했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다음 날을 위한 준비 루틴은 변함없이 이어졌다. 28개의 방망이를 항상 같은 방식으로 관리하고, 자신만의 특별한 스트레칭 방법을 고수했다. 심지어 팀이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도 그의 루틴은 계속되었다.
이치로에게 있어 이러한 루틴은 단순한 미신이나 강박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기량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불확실성의 바다에서 안정감을 찾는 앵커와 같은 존재였다. 2011년, 그가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10년간의 커리어를 마치고 뉴욕 양키스로 이적했을 때도, 이 루틴은 그와 함께 이동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팀, 새로운 기대 속에서도 그의 성과는 흔들리지 않았다.
작가 하루키 무라카미 역시 자신의 글쓰기 루틴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 4-5시간 동안 글을 쓰고, 오후에는 달리기를 한 뒤 저녁에는 독서를 하며 일찍 잠자리에 든다. 그는 이러한 루틴이 창의력의 원천이라고 믿는다. "물리적인 일상이 반복될 때, 정신적인 공간은 더 자유로워진다"는 그의 말은 루틴의 역설적인 힘을 잘 설명해준다.
그러나 모든 루틴이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루틴은 세 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다.
첫째, 지속 가능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유지할 수 없는 복잡한 루틴은 오히려 좌절감을 줄 뿐이다.
둘째, 목적성이 있어야 한다. 각 단계가 특정한 목표나 상태를 달성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셋째, 유연성이 필요하다. 환경이 바뀌어도 핵심은 유지할 수 있는 적응력이 중요하다.
프로 농구 선수 스테판 커리의 슈팅 루틴은 이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간단하면서도 일관된 그의 루틴은 연습장에서나 챔피언십 결승전에서나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러나 동시에 상황에 따라 미세하게 조정되는 유연성도 가지고 있다.
슬럼프는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이 경험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음악가, 운동선수, 작가, 과학자, 심지어 의사와 변호사까지... 누구나 자신의 능력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 같은 두려움을 경험한다. 이 순간에 루틴은 우리를 묶어두는 사슬이 아니라, 파도 속에서 우리를 지탱해주는 생명줄이 된다.
이치로는 2011년 시즌 초반, 자신의 커리어 중 가장 긴 무안타 슬럼프(0-for-23)에 빠진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루틴을 더욱 철저히 지켰다. 타격 연습, 스트레칭, 심지어 유니폼을 입는 순서까지... 모든 것을 평소와 똑같이 유지했다. 결국 그는 슬럼프에서 벗어났고, 그 시즌을 0.272의 타율로 마무리했다.

루틴의 힘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그 반복 속에서 찾는 의미와 안정감에 있다. 매일 아침 명상을 하는 CEO, 매 수술 전 같은 음악을 듣는 외과의사, 시험 전날 같은 순서로 공부하는 학생... 그들 모두 이 비밀을 알고 있다. 루틴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과 외부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이며, 슬럼프라는 폭풍 속에서도 우리를 지탱하는 견고한 기반인 것이다.
어쩌면 삶이란 끝없는 슬럼프와 절정의 순환일지도 모른다.
그 파도 속에서 루틴은 우리의 방향타가 되어, 목적지를 향해 꾸준히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
이치로처럼, 우리도 자신만의 루틴을 통해 인생의 슬럼프를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도전 365'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운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 (0) | 2025.03.22 |
---|---|
시간관리 끝판왕 : 타임박스 플래너 (0) | 2025.03.17 |
몰입 D-66 (0) | 2025.02.20 |
몰입 D-69 (0) | 2025.02.17 |
몰입 D-75 (0) | 2025.02.11 |